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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판

천지인 - 청계천 8가

옥탑방청년 2006.11.04 22:56
어제는 jaein님의 생일날, 늦게까지 술 한잔 걸치고, jaein님과 같이 택시를 탔다. 낙성대에서 jaein님은 내리고 택시는 다시 흑석동으로 향했다.

기사님이 무슨 일 하시는 분들이세요? 하고 묻는다. 새벽에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가는 경우가 많다. 기사님이 졸지 않고 운전 잘하고 계시다는 믿음도 들고 나도 심심치 않아서 좋다. 아까 jaein님과 낙성대까지 가는 길에 회사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들으시면서 내심 궁금하셨나 보다.

네이버나 다음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전혀 모르신다고 한다. 대충 인터넷 포털에 대해 설명드렸다.
중앙대 후문으로 가자고 그랬죠?
목적지 다시 한번 확인 하신다.
저는 중대 사범대 체육교육학과 71학번예요.
헉! 저는 컴퓨터공학과 95학번입니다. 선배님이셨네요.
허헛, 후배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71학번이면 나하고 24학번 차이가 나니까 현재 연세가 54세...

택시 운전한지 일주일 됐어요.
그런데도 길을 잘 아시네요?
다행히 서울토박이라 큰길은 왠만큼 알고 나머지는 손님들한테 물어물어서 갑니다.
제 후배도 예전에 택시운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녀석은 한달이 지나도 헤매던데요?
한달이 뭐예요, 6개월째 헤매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후문에 도착하니 요금이 2만2천원 정도.
2만원만 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학교를 가로질러 바로 쪽문으로 갈 작정이다. 무슨 연유로 저 연세에 야간 택시일을 시작하게 되셨을까... 세상살이 참 녹록치 않구나. 새벽 세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도서관 뒤 농구코트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 녀석들을 지나쳐 학생회관옆 쪽문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 때 학관 어디선가 들리는 안치환 노래. 요즘같은 시절에도 민중가요를 부르는 놈이 다 있네...

철 모르는 대학 2학년 시절 동아리 집행부를 맡았을 때, 나를 동생처럼 챙겨주던 한 학번 위의 동아리 연합회 누나가 있었다. 팬플룻 연주하는 동아리를 왜 하필 거기다 뒀는지 모르겠지만 유독 학관 4층엔 운동권 성향의 동아리들이 밀집해 있었다. 그 누나도 예의 그 운동권 성향의 민속춤 동아리 사람였는데, 어느날 동아리 방 소파 구석에 파묻혀 기타 튕기면서 안치환 노래를 부르고 있던 나를 지나다 보더니, 나는 변절자 안치환 싫다 한마디 하고 집회 장소로 갔다.
변절자 안치환.
벙쪘다.

운동권 노래패 출신이면서도, 결국은 돈이 되는 연가, 속칭 사랑타령 대중가요 같은 노래들을 만드는 것을 두고 한 말이리라. 하지만 운동권과는 거리가 먼 나에게 안치환의 노래들은 그 양반의 성향이 변했다고는 해도 상당히 거리가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요즘이야 랩이니 홈레코딩이니 하는 것들이 대중화가 되어 있어서 찾아보면 요즘식으로 구성된 사회비판 성향의 노래들이 많이 있지만, 당시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접한 그런 류의 노래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은 마냥 낯설고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이었다.

요즘은 잘 안듣고 지내는 노래들이지만 오랫만에 연주기에 걸고 들어봤다. 왠지 편안해 지는 기분이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아래는 어제 새벽에 방금 탔던 택시 기사님 생각을 하며 학관 옆을 지날때 누군가 부르는 안치환의 노래를 듣다가 생각났던 천지인의 청계천 8가다. 술마시고 놀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다 이 노래가 생각났다는 것이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분들께 조금은 부끄럽지만, 93년에 발표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헤이해질 때마나 나를 정신차리게 만드는 노래다.



천지인의 공식 홈페이지는 개편중이라, 관련 기사가 들어있는 천지인 카페의 글을 링크한다. 관심 있으신 분은 한번 보시길.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난 여전히 안치환식의 연가도 사랑한다.
 

안치환 6집- track 10. 사랑하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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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 뭉탱이 2006.11.06 11:41 신고 서민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꾸민, 민중가요는 정말 듣기 좋은것 같습니다. 乃<br /> 그것이 운동권이든 아니든.. 머.. 저에겐 중요하지는 않구요.. ^^;;
  • 삼일 2006.11.07 01:29 신고 네. 저 노래, 힘들때 상당한 자극이 됩니다. 하지만 저런 노래도 있는 반면 참 과격한 노래도 많지요. ^^<br /> <br />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95년 1학년때 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종로 한복판 그 큰 대로 앞뒤로 전경들에게 포위당하고, 사방에서 지랄탄이 터지면서 정말 숨은 목구멍까지 턱턱 막히고, 최루가스에 시야는 온통 희뿌옇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군요. 그때의 그 공포는 나중에 군대에서 겪은 화생방 훈련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습니다. 하물며 그 보다 더한 연행도 당하고, 심지어 고문까지 당했던 시절엔 그런 과격하고 처절한 노래가 울분을 풀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br /> <br /> 그 집회때 외쳤던 구호가 김영삼은 물러가라, 미군은 돌아가라 였더랬습니다. 김영삼은 물러갔고, 미군은 전시 작전권 이양도 하네요. 느리게나마 세상은 어쨌든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그 양반들의 노력에 대한 우리의 무임승차이든, 자연적인 역사의 흐름이든지 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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